30대가 노인보다 더 분노한다? 한국인 55%, 장기적 울분 상태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 상태를 진단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을 경험하고 있으며, 10명 중 7명은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강할수록 울분 수준도 높게 나타나는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건강재난통합대응을위한교육연구단은 케이스탯리서치를 통해 지난달 15~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8.1%가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 정신건강 수준이 '좋지 않다'고 평가했으며, '보통'(40.5%)과 '좋다'(11.4%)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5점 척도 기준 평균 점수는 2.59점으로 '보통'인 3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신건강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37%)가 가장 높게 지목됐으며, '타인이나 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 분위기'(22.3%)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울분 수준을 측정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2.5점 이상)을 겪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한 54.9%가 울분이 오래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1.6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별로는 60세 이상(9.5%)보다 30대(17.4%)에서 심각한 울분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소득별로는 월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21.1%)이 1000만원 이상 고소득층(5.4%)보다 울분 수준이 현저히 높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계층 인식에 따른 울분 분포다. 자신을 '하층'이라고 인식하는 집단의 심각한 울분 비율이 16.5%로 가장 높았지만, '상층'에서도 15%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중간층'은 9.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경제적 여건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식이 정신건강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정성 인식과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69.5%가 '세상이 공정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에서는 58%가 '나는 대체로 공정하게 대우받는다'고 답해, 사회 전체의 공정성보다 개인이 체감하는 공정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공정성에 대한 신념이 높을수록 울분 점수가 낮게 나타나는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한국의 정치·사회 사안별 울분도 측정에서는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85.5%),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85.2%),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 의료·환경·사회 참사'(85.1%) 순으로 높은 울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권과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국민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응답자의 47.1%는 지난 1년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삶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 조사에서는 '만족'(34.3%), '보통'(40.1%), '불만족'(25.6%)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교수는 "사회 안전과 안정성을 높게 유지하고 사회적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 개인과 집단의 정신건강을 위하는 길"이라며 "앞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국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사회 시스템 차원의 개선이 시급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