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미술관에? 19세기부터 현재까지 판타지의 모든 것

 미국의 유력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 뉴스가 내년에 아시아 전역에서 펼쳐질 전시 중 놓치지 말아야 할 7개의 전시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 목록에는 주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부터 판타지, 기억, 저항과 같은 묵직한 키워드를 파고드는 기획전, 그리고 관람객의 감각을 뒤흔드는 실험적인 설치 작업까지 다채롭게 포함되어, 2026년 아시아 미술계의 풍성한 흐름을 예고했다. 그중에서도 국내 미술계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윤신 작가의 개인전이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작가는 91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남북한과 파리, 아르헨티나를 넘나든 그의 70년 작업 궤적을 한국의 전쟁 이후 조각사라는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깊이 있게 재조명할 예정이다.

 

일본과 홍콩에서는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굵직한 전시가 관객을 맞는다. 일본 이시카와현립미술관은 자국 화가 카모이 레이의 서거 4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한다. 카모이 레이는 특유의 우울하고 극적인 인물화를 통해 인간 존재와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 약 90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홍콩의 M+ 미술관은 ‘신화, 괴물, 망가’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획전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일본 에도시대 목판화인 우키요에부터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 아시아의 초현실주의를 거쳐 전후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이후 아시아 시각 문화 속에 나타난 ‘판타지’의 계보를 추적하며 그 의미와 역할을 탐구한다.

 


중국과 호주에서는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전시가 눈에 띈다. 중국 베이징의 UCCA 현대미술관은 독일 기반의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카스텐 횔러의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이자 ‘의심의 실험실’로 탈바꿈시켜, 시간, 공간,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람객의 감각을 교란하고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는 도발적인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제25회를 맞는 시드니 비엔날레는 미국의 문학가 토니 모리슨의 ‘재기억(rememory)’이라는 개념을 주제로 삼는다. 기억과 망각 사이의 공간을 탐구하며, 흩어진 집단 기억을 지워진 역사를 회복하는 정치적 도구로 제시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특히 원주민과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조용하지만 끈질긴 저항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의미 있는 전시도 있다.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리는 ‘Fear No Power’ 전은 탈식민, 개발주의, 냉전의 격랑 속에서 자신들만의 대안적 존재 방식을 모색해 온 동남아시아 여성 작가 5인의 작업을 집중 조명한다. 이들은 단순히 작품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육자나 커뮤니티 운영자로 활동하며 여성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맞서 새로운 실천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이 밖에도 시드니 화이트 갤러리의 기획전 ‘더 훌리건스’ 등이 함께 언급되며 내년 아시아 미술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