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등 거장 8인, 관계의 숨결을 캔버스에 담다
디지털화된 수치와 물리적 거리감이 인간관계의 척도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망각했던 관계의 본질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전시가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술공간 아름이 기획한 ‘우리는 어떤 온도로 서로를 기억하는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물과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 자리다. 지난 14일 문을 연 이번 전시는 관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단순한 연결이 아닌,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미세한 온도의 변화로 정의하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이번 전시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건용을 필두로 김결수, 김기라, 김성배, 이원호, 이훈, 전원길, 홍성호 등 국내 미술계를 이끄는 대표 작가 8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매체와 독창적인 시선을 통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다양한 관계의 양상을 탐구한다. 어떤 작품은 미지근한 평온함을 유지하는 관계를 보여주는가 하면, 또 다른 작품은 뜨거운 흔적을 남기거나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에서도 내면에 깊이 각인된 감정의 열기를 묘사한다. 작가들은 색채의 밀도와 질감의 변주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온도를 화면 위로 끌어올렸다.

전시가 주목하는 핵심 키워드는 관계의 '심부(深部)의 열'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잔존하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근원적인 에너지를 의미한다. 참여 작가들은 사물이나 풍경 속에 투영된 인간의 기억을 추적하며, 우리가 타인을 기억할 때 떠올리는 감각적 잔상이 실제로는 어떤 질감을 지니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관람객들은 작품 사이를 거닐며 자신이 맺어온 관계들이 지닌 고유한 온도를 되짚어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간극과 화해의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예술을 삶의 공간으로 들이는 '소장'의 가치에 주목한 점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기획팀은 작품을 소장하는 행위를 타인의 예술적 시선을 자신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규정한다. 한 점의 그림이 거실 벽에 걸리는 순간,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온도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나아가 거주자의 정서적 결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는 예술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박제된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실천적인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홍채원 관장은 예술 작품이 지닌 고유한 온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온기가 관람객의 시선과 맞닿을 때 발생하는 감각의 전이는,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잔향으로 남는다. 전시는 이러한 예술적 교감이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작가와 관람객이 서로의 온도를 나누는 쌍방향적 소통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예술을 통해 관계의 방식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동시대 미술이 지향해야 할 인문학적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관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8인 작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전시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감정의 지도가 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짧은 전시 기간이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온기는 관람객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오래도록 머물며 삶의 결을 부드럽게 다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예술공간 아름이 마련한 이 특별한 온도의 기록은 관계의 소중함을 잊고 지낸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안부 인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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