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역전패가 부른 스트레스…야구팬 심장은 괜찮을까
“야구 보다가 수명이 줄어든다”는 말은 팬덤 안에서 오래된 농담이다. 하지만 응원팀이 9회 말에 무너지거나, 평범한 뜬공이 실책으로 바뀌는 순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순간 몸은 농담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가슴은 빨라지고, 목소리는 커지고,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진다.최근 방송인 매직박은 예능 프로그램 ‘말자쇼’에서 야구 경기 결과에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실점 장면이 나오자 괴성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고, 답답한 플레이에는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화면 속 모습은 과장된 예능 장면처럼 보였지만, 야구팬들의 반응은 달랐다. “저게 바로 나다”라는 공감이 쏟아졌다.
스포츠 관람은 생각보다 강한 신체 반응을 만든다. 응원팀이 득점하면 뇌는 보상 신호를 보낸다.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안정감과 관련된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 반대로 실점하거나 패색이 짙어지면 몸은 스트레스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코르티솔이 증가하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박수와 혈압이 함께 오른다.

이는 단순한 체감이 아니다. 2020년 의학 논문 데이터베이스 펍메드에 실린 연구에서는 열성 스포츠 팬들이 경기 중 패배 상황을 접할 때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팬에게 패배는 단순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몸이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스트레스 자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장에도 부담이 갈 수 있다. 2002년 영국 의학 학술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발표된 연구는 스포츠 경기 관람 뒤 심장마비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을 때 위험이 더 커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긴장감 높은 승부를 지켜보는 동안 몸은 ‘위기 대응 모드’에 들어가고,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난다.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급격한 흥분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마음도 예외가 아니다. 팀 성적에 자신을 지나치게 겹쳐 놓으면 경기 후 감정이 오래 남는다. 패배 뒤 무기력해지거나 짜증이 늘고, 일상 업무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장에서 받은 감정이 집이나 직장으로 옮겨가 주변 사람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야구가 취미를 넘어 하루 전체의 기분을 지배한다면 경계가 필요하다.
물론 야구 관람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적당한 응원은 스트레스를 풀고 삶에 활력을 준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며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본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 이후 요양시설에 있던 팬들에게 공격적 언어가 줄고 수면 리듬이 나아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스포츠가 정서적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례다.

결국 문제는 야구가 아니라 몰입의 정도다. 이기면 마음껏 기뻐하되, 졌다고 일상까지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경기 중 흥분이 심해진다면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물을 마시거나 심호흡을 하는 것이 좋다. 음주는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들 수 있어 과하지 않게 줄이는 편이 안전하다.
야구는 오래 볼수록 더 재미있는 스포츠다. 그러려면 팀의 승패만큼 팬 자신의 컨디션도 챙겨야 한다. 응원은 뜨겁게 하되, 혈압까지 등판시키지는 말자. 진짜 강한 팬은 끝까지 남는 팬이고, 끝까지 남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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