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바젤리츠 타계, 베네치아 적신 황금빛 고별사

 현대 미술의 거대한 산맥이었던 게오르크 바젤리츠가 지난달 말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 세계 예술계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의 타계와 동시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유작전 '황금빛 영웅'이 공개되어 추모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천착했던 '영웅' 연작 16점과 함께, 육성으로 전하는 고별 인사가 담긴 인터뷰 영상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1938년 독일 드레스덴 인근에서 태어난 바젤리츠는 분단의 아픔과 전후 독일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작가다. 1958년 서베를린으로 망명한 그는 고향의 지명을 성으로 삼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963년 첫 개인전 당시 파격적인 신체 묘사로 외설 논란을 일으키며 당국에 작품을 압수당하기도 했던 그는, 체제와 관습에 저항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초기 작업들은 전후 독일 사회가 마주한 불안과 억압을 도발적으로 폭로하는 창구였다.

 


바젤리츠를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린 것은 1969년부터 시작된 '역전 화법'이다. 그는 캔버스 위의 대상을 위아래로 뒤집어 그림으로써 형상이 지닌 고정된 의미를 제거하고, 관람객이 오직 색채와 형태, 붓질의 본질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거대한 화면을 고집하며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했던 그의 작업 방식은 현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유작전에서도 이러한 역전의 미학은 황금빛 배경 위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전시의 핵심인 '황금빛 영웅' 연작은 작가 자신과 평생의 반려자였던 아내 엘케의 누드를 소재로 삼았다. 바젤리츠는 생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선으로 아내와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고 회고했다. 노년의 쇠약해진 신체를 이끌고 보행 보조기에 의지한 채 바닥에 펼쳐진 대형 캔버스 위를 누비며 작업했던 그의 투혼은, 황금빛 바탕 위에 새겨진 검은 선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작품 곳곳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액션 페인팅 거장 빌럼 더코닝에 대한 경의가 녹아 있다. 바젤리츠는 말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더코닝을 떠올리며, 그의 과감한 필치를 오마주한 색채들을 화면에 덧입혔다. 이는 선배 예술가에 대한 헌사이자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고별의 인사였다. 즉흥적이면서도 견고한 붓질의 조화는 작가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회화적 완성도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베네치아의 고요한 섬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유작전은 바젤리츠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과도 같다. 전시 기획자들은 이번 작품들이 60년에 걸친 거장의 작업 세계가 응축된 결정체라고 입을 모은다. 비록 작가는 현장에서 관람객을 직접 맞이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송구함을 전했지만, 그가 남긴 황금빛 화면들은 죽음조차 가둘 수 없는 예술의 영원성을 증명하며 베네치아의 바다 위를 장엄하게 수놓고 있다.